ROGUEFORGE / 개발 일지 · CHAPTER 5

옆에 만들어 둔 3D 세상에
게임을 올려 봤습니다

2026.03 – 2026.09

Chapter 4까지의 RogueForge는 무기를 만들고 부품을 합성해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전투 게임이었습니다.

이 장은 그 게임에 다른 프로젝트가 통째로 합쳐지고, 2D에서 3D로 갔다가 다시 2D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 놓고 보니 좀 정신없습니다. 실제로도 정신없었습니다.

그 무렵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RogueForge를 다듬는 동안 옆에서 따로 만들던 게 있었습니다. AutoBattleRPG라는 웹 프로젝트였습니다. 타입스크립트로 브라우저에서 돌았고, 잠깐 손댄 게 아니라 꽤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쪽은 만드는 이유부터 달랐습니다. 3D로 세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캐릭터를 거기 풀어놓고, 알아서 생존하는 걸 지켜보는 게임이었습니다. 조종하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쪽이요.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그게 보고 싶었습니다. 밤이 오면 불을 피우고, 배고프면 뭘 찾아 먹고, 위험하면 도망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거요. 게임이라기보다 어항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둘이 각자 굴러갔습니다. 하나는 무기 만들어서 싸우는 게임, 하나는 3D 어항. 폴더도 따로 있었습니다.

3D 웹 버전 화면 — 풀밭에 선 캐릭터와 소 두 마리, 옆에서 타는 모닥불과 제작대
그 3D 세상. 모닥불을 피워 놓고 소가 지나다니는 걸 보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갔습니다. 웹 버전은 지금도 돌아갑니다(v0.5.2에서 캡처).

문득, 이 세계를 저기에 올리면 어떨까

그 3D 세상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RogueForge를 저기서 만들면 어떨까.

거창한 기획서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지형이랑 자원이랑 거점이 평면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 놓이면 어떤 느낌일까. 언덕을 넘고 물가를 돌아가는 게 좌표 계산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장소가 되면 어떨까.

이미 세상은 지어져 있었습니다. 비어 있었을 뿐이지요.

3D 웹 버전을 멀리서 본 화면 — 돌길과 울타리, 거점의 모닥불, 초원과 나무들
조금 물러서서 본 같은 세계. 여기에 RogueForge를 올리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를 하나로 합쳤습니다

결국 AutoBattleRPG를 RogueForge에 편입시켰습니다. 둘을 나란히 끌고 가는 대신, 그쪽 3D 세계가 RogueForge의 본체가 되도록 했습니다.

말이 편입이지 게임을 한 번 갈아엎는 일이었습니다. 쌓아 둔 무기 제작과 레시피, 모딩 합성은 그대로 가져오고 무대만 통째로 바꿨습니다. 이사할 때 짐은 그대로인데 집이 바뀌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집이 훨씬 컸고, 원래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RogueForge의 웹 버전은 그 타입스크립트 프로젝트가 됐습니다.

3D가 되니까 게임이 바뀌었습니다

공간이 생기니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뭘 하나?

전투만 반복하기에는 세계가 아까웠습니다. 여기에 집을 짓고, 밭을 갈고, 도구를 만들고,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중심을 전투에서 생활 크래프팅으로 옮겼습니다.

이 결정 하나가 그 뒤의 거의 모든 작업을 끌고 갔습니다. 거점을 플레이어가 직접 짓게 하고, 채집과 제작, 농사와 요리, 계절과 날씨, 체온과 허기가 차례로 들어왔습니다. 전투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생활을 지키고 넓히는 쪽으로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웹에서 Unity로

2026년 8월, 웹으로 만들던 걸 Unity로 전면 이식했습니다.

3D 지형에 프랍 수천 개, 거기에 날씨랑 조명까지 브라우저에 얹는 게 점점 버거워졌습니다. 브라우저에서 잔디를 한 번에 몇 만 포기 세우려면 결국 다 포기해야 하는 지점이 옵니다. 무엇보다 Windows 실행 파일로 제대로 배포하고 싶었고요.

옮기고 나서 제일 먼저 달라진 게 풍경이었습니다. 잔디를 인스턴싱으로 깔면서 언덕이 진짜 언덕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바람이 불면 잔디랑 나뭇잎이 따로 흔들렸습니다. 그림자가 제대로 지고, 멀리 있는 지형이 안개에 묻히고, 시간대에 따라 하늘색이 바뀌었습니다.

Unity 3D 버전 화면 — 잔디 언덕과 나무 한 그루, 호수와 바위, 멀리 안개에 묻힌 지형
Unity로 옮긴 뒤의 풍경. 웹에서는 이 정도 잔디를 한 화면에 세우는 게 어려웠습니다.

물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수심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물가에 포말이 생기고, 물속 지형이 비쳐 보이게요. 폭포도 그때 붙였습니다.

Unity 3D 버전 화면 — 절벽 아래 물과 폭포, 그 앞에 선 캐릭터
물가에 선 캐릭터. 이때는 3인칭 시점이었습니다.

이식 자체는 화면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값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같은 입력에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원본을 직접 실행해서 숫자 단위로 대조했습니다. 반올림 하나 때문에 데미지가 달라지는 걸 한 번 겪고 나면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게 이때부터 시작된 계보입니다.

장르가 한 달에 세 번 바뀌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기에 방향이 여러 번 흔들렸습니다.

8월 중순에는 거점 습격을 빼고 플레이어가 직접 짓는 샌드박스로 갔습니다. 8월 말에는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이는 방치형을 시도했고요. 그리고 며칠 뒤에는 정반대로, 던전에 들어가 전리품을 들고 살아 나와야 하는 익스트랙션 구조를 얹었습니다.

한 달 동안 세 번입니다. 저도 압니다.

재미있는 건 저 가운데 방치형이 AutoBattleRPG가 원래 하려던 바로 그것이었다는 점입니다. 합쳐 놓고 몇 달 지나서 다시 꺼낸 셈이죠.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전부 그 자체로는 재미있는 구조였는데, 만들면서 계속 걸리는 지점이 같았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건 긴장이 아니라 하루였습니다. 잃을까 봐 조마조마한 게임보다는, 오늘 밭에 물 주고 내일 창고 세우는 게임 쪽이었습니다.

9월 초에 그 방향으로 정리했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해서 도구부터 하나씩 만들어 가는 생활 샌드박스. 퀘스트가 다음 할 일을 정해 주지 않고, 재료를 주우면 "이걸로 뭘 만들지?"가 먼저 나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다시 2D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3D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활 게임에서 제일 많이 보는 건 내 거점입니다. 밭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벨트가 어느 시설로 들어가는지, 어떤 건물이 어디 서 있는지가 한눈에 읽혀야 합니다. 3D에서는 카메라 돌리고 각도 맞춰야 겨우 보이던 게 아이소메트릭에서는 그냥 보였습니다.

비용도 달랐습니다. 3D는 모델, 애니메이션, 조명, 그림자가 전부 한 벌씩 더 필요합니다. 혼자 만드는 입장에서 그건 "콘텐츠가 안 늘어난다"와 같은 말입니다.

9월 8일부터 2D 아이소메트릭으로 옮겼습니다. 지형을 블록 층으로 다시 세우고, 캐릭터와 몬스터를 스프라이트로 바꾸고, 물과 날씨와 조명을 2D에 맞게 다시 만들었습니다. 3D 시절 에셋 팩은 1.19GB를 지웠습니다. 지울 때 손이 좀 떨렸습니다.

돌아온 2D는 처음의 2D와 다릅니다. 높이가 있는 지형, 계절과 시간대, 건설과 자동화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3D에 다녀와서 얻은 걸 버리지 않고 표현만 바꾼 셈입니다.

3D 프로젝트는 지우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3D 버전은 폐기한 게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통째로 남겨 뒀습니다. 지형, 잔디, 물, 날씨, 조명, 캐릭터 리그까지 돌아가는 상태 그대로 있습니다. 위에 올린 화면들도 오늘 그 프로젝트에서 꺼낸 것입니다.

Unity 3D 버전 화면 — 나무 그늘이 드리운 잔디 언덕과 하늘, 멀리 보이는 호수
남겨 둔 3D 프로젝트에서. 언젠가 다시 쓸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만드는 생활 샌드박스에는 2D가 맞다고 판단한 거지, 3D가 틀렸다고 결론 낸 게 아니니까요. 나중에 이 세계를 다시 3D로 보고 싶어질 수도 있고, 그때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덜어낸 건 지금 프로젝트에서 안 쓰는 에셋 팩뿐입니다. 세계를 만든 코드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 장을 지나고 나서

이 기간에 게임 이름표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전투 로그라이크에서 3D 생존 크래프팅으로, 방치형으로, 익스트랙션으로, 다시 2D 생활 샌드박스로. 프로젝트도 두 개에서 하나가 됐고요.

돌아보면 흔들린 건 장르였고, 안 흔들린 건 직접 만든다는 축이었습니다. 무기를 조립하던 게 도구를 만드는 게 되고, 거점을 짓는 게 되고, 생산 라인을 잇는 게 됐습니다. 만드는 대상이 넓어졌을 뿐입니다.

그 시작은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하나였습니다. 옆에 만들어 둔 저 3D 세상에, 이 게임을 올리면 어떨까. 그 세상은 지금도 하드디스크 어딘가에서 잘 있습니다.

다음 장은 그 위에 농사와 자동화를 붙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