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만들어 둔 3D 세상에
게임을 올려 봤습니다
2026.03 – 2026.09
Chapter 4까지의 RogueForge는 무기를 만들고 부품을 합성해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전투 게임이었습니다.
이 장은 그 게임에 다른 프로젝트가 통째로 합쳐지고, 2D에서 3D로 갔다가 다시 2D로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 놓고 보니 좀 정신없습니다. 실제로도 정신없었습니다.
그 무렵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RogueForge를 다듬는 동안 옆에서 따로 만들던 게 있었습니다. AutoBattleRPG라는 웹 프로젝트였습니다. 타입스크립트로 브라우저에서 돌았고, 잠깐 손댄 게 아니라 꽤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쪽은 만드는 이유부터 달랐습니다. 3D로 세상을 하나 만들어 놓고, 캐릭터를 거기 풀어놓고, 알아서 생존하는 걸 지켜보는 게임이었습니다. 조종하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쪽이요.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그게 보고 싶었습니다. 밤이 오면 불을 피우고, 배고프면 뭘 찾아 먹고, 위험하면 도망가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거요. 게임이라기보다 어항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둘이 각자 굴러갔습니다. 하나는 무기 만들어서 싸우는 게임, 하나는 3D 어항. 폴더도 따로 있었습니다.

문득, 이 세계를 저기에 올리면 어떨까
그 3D 세상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RogueForge를 저기서 만들면 어떨까.
거창한 기획서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냥 궁금했습니다. 지금까지 만든 지형이랑 자원이랑 거점이 평면이 아니라 실제 공간에 놓이면 어떤 느낌일까. 언덕을 넘고 물가를 돌아가는 게 좌표 계산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장소가 되면 어떨까.
이미 세상은 지어져 있었습니다. 비어 있었을 뿐이지요.

그래서 두 개를 하나로 합쳤습니다
결국 AutoBattleRPG를 RogueForge에 편입시켰습니다. 둘을 나란히 끌고 가는 대신, 그쪽 3D 세계가 RogueForge의 본체가 되도록 했습니다.
말이 편입이지 게임을 한 번 갈아엎는 일이었습니다. 쌓아 둔 무기 제작과 레시피, 모딩 합성은 그대로 가져오고 무대만 통째로 바꿨습니다. 이사할 때 짐은 그대로인데 집이 바뀌는 것과 비슷합니다. 다만 집이 훨씬 컸고, 원래 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RogueForge의 웹 버전은 그 타입스크립트 프로젝트가 됐습니다.
3D가 되니까 게임이 바뀌었습니다
공간이 생기니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 뭘 하나?
전투만 반복하기에는 세계가 아까웠습니다. 여기에 집을 짓고, 밭을 갈고, 도구를 만들고, 하루를 보낼 수 있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게임의 중심을 전투에서 생활 크래프팅으로 옮겼습니다.
이 결정 하나가 그 뒤의 거의 모든 작업을 끌고 갔습니다. 거점을 플레이어가 직접 짓게 하고, 채집과 제작, 농사와 요리, 계절과 날씨, 체온과 허기가 차례로 들어왔습니다. 전투가 없어진 건 아닙니다. 생활을 지키고 넓히는 쪽으로 자리가 바뀌었습니다.
웹에서 Unity로
2026년 8월, 웹으로 만들던 걸 Unity로 전면 이식했습니다.
3D 지형에 프랍 수천 개, 거기에 날씨랑 조명까지 브라우저에 얹는 게 점점 버거워졌습니다. 브라우저에서 잔디를 한 번에 몇 만 포기 세우려면 결국 다 포기해야 하는 지점이 옵니다. 무엇보다 Windows 실행 파일로 제대로 배포하고 싶었고요.
옮기고 나서 제일 먼저 달라진 게 풍경이었습니다. 잔디를 인스턴싱으로 깔면서 언덕이 진짜 언덕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바람이 불면 잔디랑 나뭇잎이 따로 흔들렸습니다. 그림자가 제대로 지고, 멀리 있는 지형이 안개에 묻히고, 시간대에 따라 하늘색이 바뀌었습니다.

물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수심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물가에 포말이 생기고, 물속 지형이 비쳐 보이게요. 폭포도 그때 붙였습니다.

이식 자체는 화면을 다시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값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었습니다. 같은 입력에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원본을 직접 실행해서 숫자 단위로 대조했습니다. 반올림 하나 때문에 데미지가 달라지는 걸 한 번 겪고 나면 그렇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홈페이지에서 받을 수 있는 게 이때부터 시작된 계보입니다.
장르가 한 달에 세 번 바뀌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시기에 방향이 여러 번 흔들렸습니다.
8월 중순에는 거점 습격을 빼고 플레이어가 직접 짓는 샌드박스로 갔습니다. 8월 말에는 캐릭터가 알아서 움직이는 방치형을 시도했고요. 그리고 며칠 뒤에는 정반대로, 던전에 들어가 전리품을 들고 살아 나와야 하는 익스트랙션 구조를 얹었습니다.
한 달 동안 세 번입니다. 저도 압니다.
재미있는 건 저 가운데 방치형이 AutoBattleRPG가 원래 하려던 바로 그것이었다는 점입니다. 합쳐 놓고 몇 달 지나서 다시 꺼낸 셈이죠.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온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전부 그 자체로는 재미있는 구조였는데, 만들면서 계속 걸리는 지점이 같았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건 긴장이 아니라 하루였습니다. 잃을까 봐 조마조마한 게임보다는, 오늘 밭에 물 주고 내일 창고 세우는 게임 쪽이었습니다.
9월 초에 그 방향으로 정리했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해서 도구부터 하나씩 만들어 가는 생활 샌드박스. 퀘스트가 다음 할 일을 정해 주지 않고, 재료를 주우면 "이걸로 뭘 만들지?"가 먼저 나오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다시 2D로
방향을 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3D가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활 게임에서 제일 많이 보는 건 내 거점입니다. 밭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벨트가 어느 시설로 들어가는지, 어떤 건물이 어디 서 있는지가 한눈에 읽혀야 합니다. 3D에서는 카메라 돌리고 각도 맞춰야 겨우 보이던 게 아이소메트릭에서는 그냥 보였습니다.
비용도 달랐습니다. 3D는 모델, 애니메이션, 조명, 그림자가 전부 한 벌씩 더 필요합니다. 혼자 만드는 입장에서 그건 "콘텐츠가 안 늘어난다"와 같은 말입니다.
9월 8일부터 2D 아이소메트릭으로 옮겼습니다. 지형을 블록 층으로 다시 세우고, 캐릭터와 몬스터를 스프라이트로 바꾸고, 물과 날씨와 조명을 2D에 맞게 다시 만들었습니다. 3D 시절 에셋 팩은 1.19GB를 지웠습니다. 지울 때 손이 좀 떨렸습니다.
돌아온 2D는 처음의 2D와 다릅니다. 높이가 있는 지형, 계절과 시간대, 건설과 자동화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3D에 다녀와서 얻은 걸 버리지 않고 표현만 바꾼 셈입니다.
3D 프로젝트는 지우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 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3D 버전은 폐기한 게 아닙니다.
프로젝트를 통째로 남겨 뒀습니다. 지형, 잔디, 물, 날씨, 조명, 캐릭터 리그까지 돌아가는 상태 그대로 있습니다. 위에 올린 화면들도 오늘 그 프로젝트에서 꺼낸 것입니다.

지금 만드는 생활 샌드박스에는 2D가 맞다고 판단한 거지, 3D가 틀렸다고 결론 낸 게 아니니까요. 나중에 이 세계를 다시 3D로 보고 싶어질 수도 있고, 그때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덜어낸 건 지금 프로젝트에서 안 쓰는 에셋 팩뿐입니다. 세계를 만든 코드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 장을 지나고 나서
이 기간에 게임 이름표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전투 로그라이크에서 3D 생존 크래프팅으로, 방치형으로, 익스트랙션으로, 다시 2D 생활 샌드박스로. 프로젝트도 두 개에서 하나가 됐고요.
돌아보면 흔들린 건 장르였고, 안 흔들린 건 직접 만든다는 축이었습니다. 무기를 조립하던 게 도구를 만드는 게 되고, 거점을 짓는 게 되고, 생산 라인을 잇는 게 됐습니다. 만드는 대상이 넓어졌을 뿐입니다.
그 시작은 어느 날 문득 든 생각 하나였습니다. 옆에 만들어 둔 저 3D 세상에, 이 게임을 올리면 어떨까. 그 세상은 지금도 하드디스크 어딘가에서 잘 있습니다.
다음 장은 그 위에 농사와 자동화를 붙인 이야기입니다.